숙소인 6층까지 찾아온 그 치한이 하도 거칠게 공격해오는
바람에 이수미는 다급해서
그곳에서 뛰어내릴 각오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 아래층에 자고 있던 동료가수 ‘잘 있어요’의 이현,
배성 등이 올라와
그를 내쫓아서 겨우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한다
이러한 사건이 말해주듯 이수미는 여러 스캔들로 사생활은
불행했던 편이다.
김영광 작곡의 팝계열 '여고시절'(1972)로 폭발적
인기몰이에 성공!
신인가수상을 거치지않고, 곧바로 10대가수상, 7대가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는다.
그러나 그 영광도 잠시... 각 신문지면을 뜨겁게
달구었던'대천 해수욕장 면도칼
자해 사건'(1973.여름) 으로 일약 톱스타였던 그녀가 병원으로 실려 가고!...
우여곡절
끝에 사건은 그녀가 자해한 걸로 종결짓지만 그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자, 가수협회에서는 그녀에게 제명처분이라는 제재를
내리고..
화인처럼 각인된 흉터와 실추된 명예, 그리고... 노래까지
부를수 없는 그녀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는데...
1년간의 제재가 풀려'내 곁에 있어 주'(1974)라는 신곡으로 재기를
시도하지만'연예인
대마초 사건'(1976) 에 연루되어 7년 동안이나 활동이 금지 된다.
활동이 전면 중단되자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수미. 수미는 백화점 점원과 밤무대 가수로
눈물을 삼켜가며 재기를
꿈꾸지만...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고 세 번째 곡' 죄가 되나요'를 들고 다시 가요계에 도전한 이수미씨...
그러나 5공시절
사회정화추진위원회의 징계(1982)로 이수미씨의 삶은 다시 곤두박질을 치고...
정말이지 그녀의 삶은 고난의 연속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흐르는곡
'여고시절'은 오아시스 레코드사 소속 여성가수들 중에서도 이곡에 맞는
가수는 너뿐이니 수미 네가
불러야 한다면서 작곡가 김영광씨의 지도하에 단 3대의
기타만으로 녹음에 들어가 72년 그해 최고의 가수가 된 그녀이지만 불운의 연속으로
인한 그녀의 지난 세월은 또다른
인고의 세월로 채워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