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h Piaf (에디뜨 삐아프) -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예요-난 아무것도후회하지 않아요)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뜨 삐아프! 그녀가 만년에 남긴 걸작
< Non, Je ne regrette rien : 아니에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음악에 눈뜨던 어린시절.. 경기도 파주의 미군부대 여 하사가 축음기로 이 노래를 들려 주었는데.......
(아마 프랑스계 (주노족) 미군이었던듯..)
이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때 전율하며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군요
-------- 서병길 올림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예요)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est Paye, Balaye, Oublie, Je Me Fous Du Passe
Avec Mes Souvenirs J'ai Allume Le Feu
Mes S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Balaye Les Amours Avec Leurs Tremolos
Balaye Pour Toujours
Je Reparas A Zero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ar Ma Vie, Car Me Joies
Aujourd'hui Ca Commence Avec Toi
아니에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그건 모두 나와 상관없어요
아니에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건 댓가를 치루었고 쓸어버렸고 잊혀졌어요
난 과거에 신경쓰지 않아요
나의 추억들로 난 불을 밝혔었죠
나의 슬픔들, 나의 기쁨들
이젠 더 이상 그것들이 필요치 않아요
사랑들을 쓸어버렸고
그 사랑들의 모든 전률도 쓸어버렸어요
영원히 쓸어 버렸어요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꺼에요
아니에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그건 모두 나와 상관없어요
아니에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프랑스 샹송 가수를 꼽는다면 단연
에디트 피아프(1915~1963)일 것이다.
"샹송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는 진정으로 거리의 가수라 할 수 있다.
본명이 "에디트 가시옹"인 그녀는 1915년 12월 파리의 가난한 노동자 구역인 벨빌에서 태어나 1962년 10월 별세.
그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머니는 거리의 가수였고 아버지 역시 길에서 묘기를 부렸다.
그녀는 1922년부터 아버지를 따라 장터와 거리에서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뛰어난 재주와
목소리를 알렸다. 스물한 살 되던 해, 그녀는 길에서 노래하다 우연히 어느 카바레 사장의 눈에 띄어
혼자 노래할 기회를 갖게 되엇다. 그녀는 '어린 참새(피아프는 속어로 참새를 가리킨다)'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곧 여러 음반사에서 그녀에게 계약을 제의해 왔다. 1936년 그녀는 첫 음반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아코디언 연주자(L'Accordeoniste)', '외인부대병사(Mon legionnaire)' 등을 발표했다.
그녀는 연극과 영화에서 배우로도 활약을 했다. 또, 그녀는 노랫말을 쓰기도 하면서 다양한 재능을 선보였다.
그녀는 400여곡의 노래를 남겼는데, 그 중 약 80여곡의 노랫말을 직접 썼다. 그녀는 점점 '어린 참새' 피아프의
이미지를 벗고 당당한 스타인 '에디트 피아프'로 변신해 갔다. 1944년 그녀는 카바레 물랭루즈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이브몽땅과 만나 사랑에 빠져 그의 후원자 겸 매니저 역할을 자청했다.
그와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바로 '장미빛 인생 (La vie en rose)'이다.
1947년부터 그녀는 자신이 발굴한 '샹송의 친구들(Compagnous de la Chanson)'이라는 남성 그룹과 함께
미국 공연을 떠났고, 그들이 함께 부른 '세 번의 종소리(Les trois cloches)'는 온 미국에 퍼졌다.
미국 공연 중 그녀는 권투 선수인 마르셀 세르당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1949년 10월 비행기 사고로
그가 죽으면서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그와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녀는 '사랑의 찬가(Hymne à l'amour)'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슬픔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점점 더 술과 마약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미국 공연과 '사랑의 찬가', '빠담 빠담(Padam...Padam) 등의 대 성공으로 그녀는 원기를 회복했다.
1953년 이후 그녀는 샤를 아즈나부르 같은 신세대 작곡가들과도 손을 잡았는데, 자신의 노래를 고르는데
아주 까다로웠다. 또한, 1956년 미국 카네기홀 공연과 '파리의 하늘 아래(Sous le ciel de Paris)',
군중(La foule)', '난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마담 피아프'는
무대 위에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 그녀는 질병과 마약의 어둠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1963년, 그녀는 47세로 숨을 거두었다.
교회에서는 그녀의 이혼 경력을 들어 장례식을 거부했지만,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서 거행된 장례식엔
수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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