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음악방

La Dame De Coeur /Nana Mouskouri

서병길 2015. 4. 20. 16:51


     La Dame De Coeur /Nana Mouskouri (슬픈 운명)

      Si tu es le roi tu es roi des tricheurs 그이는 하트의 여왕에게 슬픔의 에이스 Tu dis je t'aime et puis tu t'en vas 오늘은 여기 있어도 내일은 가고 없네 Moi je suis la dame du roi des fous 젊은이들 많지만 사랑하는 이들 없어라 J'en ris et j'en pleure a quoi tu joues 내 사랑 날 떠나면 나는 어떡해 J'ai eu tout l'or tout l'argent du ciel 금은 가득한 창고가 저 산에 있어 Je n'ai jamais rien voulu que l'amour 내가 그것을 헤아려야 한다 해도 Mais la saison des arcs-en-ciel 당신 생각에 그것들 셈할 수 없네 La dame de cœur l'attend toujours 눈물이 눈을 가려 볼 수가 없네 Elle est prete a faire le tour de l'enfer 아버지도 사랑하고 어머니도 사랑하고 A vivre hors la loi pour etre avec toi 누이도 사랑하고 동생도 사랑하고 Elle peut aussi pour l'as des tricheurs 친구도 사랑하고 친척도 사랑하지만 Se changer en pique, la dame de cœur 모두 다 버리고 그대와 함께 가리 Si tu es le roi tu es roi des tricheurs 그이는 하트의 여왕에게 슬픔의 에이스 Tu dis je t'aime et puis tu t'en vas 오늘은 여기 있어도 내일은 가고 없네 Moi je suis la dame du roi des fous 젊은이들 많지만 사랑하는 이들 없어라 J'en ris et j'en pleure a quoi tu joues 내 사랑 날 떠나면 나는 어떡해 [Nana Mouskouri(나나 무스쿠리)]는 50년대 후반 음악계에 데뷔하여 거의 반세기 가까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녀는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음악 사상 최고의 보컬 리스트로 꼽히는 아티스트로 그 어느 여가수보다도 많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큼지막한 뿔테 안경과 긴 생머리, 자신의 최초 히트곡이자 별명이기도 한 [The White Rose Of Athens(아테네의 흰 장미)]를 연상시키는 흰 옷과 지적이고 수수한 이미지의 [Nana Mouskouri]는 그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맑고 고운 음색을 앞세워 화려함으로 장식된 대중 음악계에서 변함없는 팬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Nana Mouskouri]가 전 세계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Nana Mouskouri]가 보여준 다양한 음악 스타일 덕이다. 모국인 그리스어는 물론 무려 7개 국어를 구사하는 [Nana Mouskouri]는 이처럼 다양한 언어로 재즈와 팝, 록, 샹송, 그리스 전통 음악, 오페라 아리아, 종교음악, 포크 등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유럽은 물론
      미 대륙과 아시아 등 전 세계적으로 팬들을 확보해나갔다. [Nana Mouskouri]의
      주무기는 바로 익히 알려진 각국 음악을 리메이크하거나 다른 언어로 번안해
      부르는 것이다. 물론 [Nana Mouskouri]의 오리지널 히트곡도 많지만 팝과 전통 민요, 포크, 심지어는 클래식 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Nana Mouskouri]의 입을 빌어 새롭게 태어났다. [Nana Mouskouri]는 1934년 10월 13일 그리스의 크레타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 가족과 함께 아테네로 옮겨간 그녀는 12세 때부터 보컬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무렵 부터 [Frank Sinatra(프랭크 시내트라)]나 [Ella Fitzgerald(엘라 핏제럴드)], [Billie Holiday(빌리 홀리데이)]등 당시의 유명한 재즈 보컬리스트들과 그리고 [Edith Piaf(에디트 삐아프)]등 샹송 가수들에게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16세 때 아테네 음악원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했지만 재즈에 빠져들어 재즈 밴드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결국 성악가의 길을 포기하고 만다. 그 무렵에 [Agnes Baltsa(아그네스 발차)], [Georges Mustaki(조르주 무스타키)]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거물 작곡가 [Manos Hadjidakis(마노스 하지다키스)]와 만나게 되면서 대중 음악계에 발을 내딛게 된다. 1958년 [Manos Hadjidakis]의 노래를 담은 음반을 발표했고 이듬해 그리스 음악제에서 [Manos Hadjidakis]의 노래를 불러 대상을 수상한 그녀는 지중해 음악제에서도 대상을 수상해 확실히 실력을 인정 받았다. 이후 해외로 진출한 그녀는 [Manos Hadjidakis]의 노래를 독일어 가사로 불러 독일에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트윈폴리오가 번안해 부른 곡 [Me T'Aspro Mou Mantili(하얀 손수건)]을 히트시켰고 [Manos Hadjidakis]가 작곡한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주제곡도 그녀의 몫이었다. 1962년에는 거장 [Quincy Jones(퀸시 존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가 앨범 [The Girl From Greek Sings]를 발표했고 영국에서도 스탠더드 곡을 부른 앨범 [My Colouring Book]을 발표했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뒤에는 [Michel Legrand(미셸 르그랑)]의 곡을 받아 음반을 냈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앨범 [Nana Sings]를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Harry Belafonte(해리 벨라폰테)]와의 라이브 듀엣 앨범 [An Evening With Belafonte-Mouskouri]를 발표했고 1969년엔 영국에서의 첫 정규 음반 [Over And Over]를 내놓아 차트에 2년여 동안 머무는 빅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서 커다란 인기를 모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1984년에는 20여년만에 고국인 그리스에서 공연을 가진데 이어 그리스어 앨범을 발표했고 이 무렵 또 다른 히트곡 [Only Love]를 터뜨려 건재를 과시한다. 스페인어 싱글 [Con Todo el Alma]를 통해 스페인어권 팬들 에게도 다가선 그녀는 오페라 아리아 등 클래식 작품을 다룬 [The Classical Nana]를 내놓으며 장르와 언어를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이는 90년대에 들어서도 쉼없이 이어졌다. 그녀의 활동 영역은 음악에만 머문 것이 아니어서 1993년엔 유니세프 인권대사로 임명이 되었고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유럽 연합 의회에서 그리스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