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음악방

Beautiful Brown Eyes / Connie Francis

서병길 2013. 6. 13. 15:59

        Beautiful Brown Eyes - Connie Francis
        Willie, I love you my darling 윌리, 사랑하는 그대여 I've loved you with all my heart 내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습니다 Tomorrow we might have been married 내일이면 나는 그대와 결혼할 수도 있었는데 But ramblin' has kept us apart 망설이는 마음이 우리를 갈라 놓았습니다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갈색눈동자여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갈색눈동자여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갈색눈동자여 I'll never love blue eyes again 다시는 푸른 눈동자를 사랑하지 않으렵니다 Willie, I love you forever 윌리, 영원한 내사랑 그대여 I'd loved you from the start 처음부터그대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Tomorrow I would been happy 내일이면 행복을 얻을수 있었는데 But ramblin' has torn us apart 망설이는 마음에 우리는 헤어지고 말았어요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갈색눈동자여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갈색눈동자여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갈색눈동자여 I'll never love blue eyes again 다시는 푸른 눈동자를 사랑하지 않으렵니다 I'll never love blue eyes again 다시는 푸른 눈동자를 사랑하지 않으렵니다
        Connie Francis(카니 프란시스)는 50년대말에서 60년대초까지 가장 유명한 여성 보컬리스트였다. 그녀는 최고의 인기와 최악의 불행을 10년씩 나누어서 누리고 겪었던 가수이기도 하다. 한해에 무려 9곡을 히트시키기도 했으나 세상 온갖불행 또한 그녀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카니는, 이태리계 이민자로 음악가인 아버지 "후랑코네로"의 딸로 출생. 네 살때부터 아코디온을 연주하고 11살에 어린 가수와 연주자들의 최고의 등용문인 NBC TV 쇼 'Startime'에 출연한다. 몇주후, 뒷날 카니의 매니저가 되는 프로듀서 조지 쉐크가 그녀에게 아코디언을 그만두고 노래에 집중할 것을 권유, 이후 4년동안매주 "Startime"에 출연하여 노래를 하게 된다. 카니가 17세이던 1955년. MGM 레코드사의 픽업으로 계약을 맺으나, 1955년 그녀의 첫 싱글 "Freddy"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후로도 약 2년 동안에 걸쳐 발표한 9곡 모두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이 때 카니의 아버지는 흘러간 명곡들을 리메이크 하자는 제안을 하고, 아빠의 권유를 받아들인 그녀는 이후 연속으로 히트곡을 양산 한다. 그녀 최초 히트곡 "Who's Sorry Now"는 1923년도 타인의 히트곡. 카니가 재취입하여 성공하기 이전에도 이미 1946년 해리 제임스 악단에 의해 다시 히트하기도 했었다. 최종적으로 이 곡이 그녀를 세계적인 수퍼스타로 만든 거다. 영국 싱글차트 1위, 미국 넘버 4를 기록하며.1958년, 아메리칸 밴드스탠드 TV 쇼에 데뷔한 카니는 1958년 한 해에만 모두 다섯곡을 히트시키며 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중에는 Neil Sedaka(닐 세다카)가 작곡해 준 [Stupid Cupid]가 차트 14위에 [My Happiness]가 2위의 히트를 기록했다. "My Happiness" 역시 타가수의 1948년 히트곡 이었다. 그녀의 전성기는 1958년부터 1962년까지였다. 이 기간에 그녀는 매년 평균 8곡의 차트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 중 "Lipstick on Your Collar", "Everybody's Somebody's Fool", "Mama" 한국제목 "보이헌트" 주제곡 "Where The Boys Are", "Together", "Vacation"등이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애청곡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녀의 빌보드 차트 탑 텐 히트곡만 알아 보아도 지면이 다 차버릴 정도로 팬들의 사랑속에 푹 파묻혀 인기를 누린 가수였다. 화려한 히트 행진을 계속하던 그녀에게 1970년대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음악적인 성공에 반해 결혼생활은 실패를 거듭한다(네번의 결혼) 그러나 그녀의더 큰 불행은 1974년 11월 8일에 시작된다. 이날, 공연후 숙소에 묵고 있던 그녀가 창문으로 숨어든 불량배에게 성폭행 당한 것을 시작으로 연속 닥쳐드는 시련들... 암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사망,남동생의 총격 피살사건. 1977년. 본인의 네번에 걸친 성대수술이 잘못되어, 고왔던 그녀의 목소리도 잃고야 만다. 그녀의 70년대는 60년대의 영광을 시기하듯 스며든 엄청난 불행으로 몸부림쳐야 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견딜 수 없었던 고통을 그녀는 이겨냈다. 히트차트에 다시 오르기 위해 무단히 노력도 했으나 한번떠난 영광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Connie Francis는 60년대 팝 음악계의 전설로서 어제의 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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