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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았다 내 추억의 고향 먼 파주 부엉산 위를 아주 높게 커다란 날개를 가진 한 마리의 부엉이처럼 별이 빛나는 밤이 되면 동네 어른 애들 누구네 거랄 것도 없이 헌 돗자리를 펴놓고 지나간 전설에 이야기와 전쟁에 피난 이야기와 자기 자신에 인생극장과 누구 네 누구 네 이야기를 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며 나누고 꼬마 녀석들은 숨바꼭질 술래잡기에 떠들썩하고 야트막한 앞산 자락엔 개똥벌레가 불야성을 이루며 부엉이 밤 꿩 우는소리와 흐드러져 뒤범벅이 되는 그곳 사시장철 언제나 달이 뜨는 산 만월봉에서 포수와 곰에 전설이 구전 구전으로 내려오는 파평산 자락 포수바위 그 너머까지 개묵이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개울 돌을 들추면 내 작은 손보다 더 많은 가재가 잡히고 붕어 피라미 떼가 물에 반쯤 되는 작은개울과 임진강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큰개울 위를..... 한 마리 작은 개구리 인양 폴짝 대여 뛰어들며 동네 애들 물장구치던 각시터 위를 산 너머 너머 감악산 기슭 무건리 옛 적남 학교 위를 수작골 고갯마루 터에 그 새로 지은 학교 위를... 거기 내 어린 순결한 영혼에 점 박혀 있는 어린 동무들과 정겨운 이들이 그렇게 모여 살고 있던 곳 계절의 시작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 철쭉 산나리 원추리 꽃 복사꽃 살구꽃 돌배나무 꽃이 온통 난장을 이뤄 향기를 내뿜고 그 귀하다는 더덕 잔데 고비 두릅 삽주나물이 저녁밥 한 솥 앉혀놓고 바구니를 들고 뒷동산에 뛰어올라가면 지천이다 싶이 널려 있어 저녁 밥상 위에 맛있는 반찬이 되고 이름 모를 각종 산새와 물가에 물총새 들판에 종다리 총알같이 나르는 제비들이 집 짓기에 분주하고 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꿀벌들이 꽃마다 모여 유영이라도 하듯 너풀대며 나르고 밭갈이하는 어미 소 따라다니며 음매 대는 송아지 울음소리가 너무나 정겹던 그곳 태양은 언제나 불거지 날 피리 고기떼 따라 큰 개울로 올라온 임진강 안개를 산화시키고 그 위대한 힘으로 노랑참외 박참외 개구리참외를 익게 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개울가로 모이게 하는 계절의 때가 되면 온 동네를 휘감는 극성스런 매미 소리가 시원한 나무 그늘과 대청마루에서 낮잠 자는 이들에게 자장가 겸 또는 불청객이 되고 산딸기와 머루 다래를 달게 만들고 올챙이를 개구리로 변신시키는 대역사에 작업을 하고 물뱀과 꽃뱀 각종 독사가 들과 산 논 가에 우글거려도 어떤 어린 아이도 두려움 없이 뒹굴며 뛰어놀고 아무 어른도 그것을 경고하지 않는 그런 꺼릴 것 없는 자연 속에서.... 이른 아침이면 마을 앞동산에 전쟁에 상흔으로 여기저기 널려 있는 포탄 껍질로 만든 쇠 종을 밤나무에 걸어 놓고 제일 먼저 일어난 아이가 그 종을 치면 어떤 어른이 깨우지 않아도 눈을 비비며 달려나가 애국가를 부르고 건강 체조를 하고 동네 청소를 해도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아도 당연시했던 그 먼 옛날에 파주 부엉산 위를 한 마리에 장수풍뎅이와 희한하게 생긴 집게벌레만 있어도 즐거운 장난감이 되고 웃음이 되고 동무들에게 있는 자 되어 자랑거리가 되던 새까만 검둥이 되어 뛰어놀던 그곳 그래도 거기에 온갖 꿈과 희망이 있고 용기가 있고 추억과 낭만이 있고 보리깜부기 뱀딸기 산싱아와 삘기 새순의 맛있음이 한껏 어우러져 자라나고 있었고 들판에는 옥수수 참외 수박이 부쩍부쩍 익어가고 산기슭 여기저기에 눈을 뜨기 시작한 각종 산새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온 계곡을 메아리치고 천둥이 치고 며칠이라도 비가 올 때면 비어 있는 아무 네 집 사랑방에 모두 모여서 부침이나 감자 옥수수를 한 광주리 해놓고 먹고 마시며 개울 건너 어느 잘사는 집엔 방안에서 개를 기른다고 온갖 흉을 다 보며 수다를 떨어도 아무런 뒤탈이 없던 감악산 벋어 내린 만월봉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사는 향수 어린 곳 그 산 아래 야트막한 동네 먼 파주 부엉산 위를... 한줄기 가을바람은 어느 날 한숨에 깊은 잠을 자고 눈 비비고 일어나면 온 주변 산과 들판을 만산홍엽으로 온통 물들여 놓고 산모퉁이 어느 곳에선가 불어오는 한 가닥의 바람은 어느 듯 자연의 지배자처럼 산과 들녘에 모든 옷을 벗겨 나갈 때쯤이면 남쪽으로 간다는 한 무리에 기러기 떼 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수 도 없이 기역자 편대 비행으로 부엉산 위를 높게 날아 어디론가 나르고 밤이며 대추며 호두 잣 머루 다래 고욤이 산과 들판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모든 이들의 양과자 대용 간식과 식량이 되고 친근감 드는 코 맹맹 목소리 대 지주 명순 아버지의 곡식 수확 일꾼들 일손 다그치는 소리가 어스름 저녁 무렵부터 시작되는 귀뚜라미 소리에 묻힐 때까지 온 동네를 구성지게 휘감던 그곳 서리와 눈보라는 언제나 파평산 너머 임진강 쪽에서 살을 에는 듯싶은 북풍한설이 되어 몰아치기 시작하는 때가 되면 온 동네 논바닥과 개울물 줄기들은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 되어 뒹굴게 하고 잘 나지도 않게 만든 작은 외발 썰매와 엉성한 나무판대기에 철삿줄 두 가닥으로 만든 자기 썰매 자랑에 시끌시끌하고 깨진 얼음에 풍덩 젖은 흙투성이 신발과 구멍이 숭숭 뚫린 양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느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 가에 모여 서서 물에 빠진 게 뭐 대단한 자랑거리 무용담 인양 시시덕거리며 빙 둘러서서 말리고 눈구덩이 던 얼음장 위 던 가리지 않고 자치기 하는 동네 형들의 환호성과 자수 잘못 재었다는 시시비비 욕지거리가 방패연과 가오리연의 연싸움 다툼과 겹치고 여자애들 고무줄놀이 노랫소리와 뒤섞여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도 전혀 상스럽지 않게 정겹게 우스갯소리로만 들리고 정월만 되면 쥐불놀이 구실로 구태여 대보름날을 기다릴 것도 없이 크고 작은 불 깡통들이 밤하늘에 번쩍이며 한 가닥 유성처럼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다니던 그 야트막한 산 아래 개울가 작은 동네 아! 너무나도 그리워 언제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복받치며 눈물이 앞을 가릴 듯이 흘러내리는 그 추억의 먼 파주 곰시 부엉산 위를.... *******(계속) (靑鳥 서병길의 졸작중에서 미완성) (1979년부터.....)